Wednesday, February 6, 2008

Experiencing God - Bible Study (Week 14 - January 27, 2008)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제 12 단원)

  •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
    코이노니아는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역동적인 생명력을 경험하려면 코이노니아는 필수 조건 입니다. 교회를 형식적으로 다니고 하나님을 자기 마음데로 자기가 원하는 만큼만 믿고 싶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만들어진 코이노니아는 또한 성령님에 의해 유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코이노니아가 위태로와 질 수가 있는데,그것은 그 형제나 자매의 죄 때문 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어졌기 때문 일 수도 있읍니다.
  •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죄’에 대하여 아주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데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 죄인데, 그 죄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나 관대 합니다. 그 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읍니다. 진정한 고백(하나님이 나에 대하여 보는 것에 내가 동의 하는 것)이 없으면서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를 이루기는 불가능 합니다. 지체하지 않고 바른 고백을 하는 것이 코이노니아의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바른 코이노니아가 있다는 증거 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관계하고 있으면 죄에 대하여 아주 민감하게 될뿐 아니라, 바른 고백을 하지 않으면 괴로와서 견딜 수가 없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면서 어두운 가운데 거하면( 육에 속한 자로 행동 하는 것)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요한 일서에서는 말하고 있읍니다.또한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 되는 것이고, 진리(예수님) 가 우리안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성령님이 그 죄를 고백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 다윗왕은 밧세바하고 간통하고, 우뢰아를 전쟁으로 나가서 죽게 하고… 이렇게 많은 죄를 지은 다윗과 사울 왕을 비교해 봅시다. 왜 하나님의 영이 사울 왕에게서는 떠났고, 다윗 왕에게는 남아 있게 되었을 까요? 그것은 그 둘이 자기가 지은 죄를 어떻게 처리 했느냐의 차이점 입니다.
    • 사울왕은 사무엘 선지자가 찾아와서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하여 이야기 했을때, 백성들이 두려워서 그 백성들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변명 하기에 급급 했읍니다.(삼상15장) 우리는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이 있읍니다. 누가 우리의 죄에 대하여 권면 했을때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가를 알려 주는 부분 입니다.
    • 하지만 다윗왕이 범죄했을때 (그는 자기가 범죄 했다는 것을 아마 깨닫고 있지 못 했겠지요)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냅니다. 그랬을때 다윗왕은 변명을 하지 않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 하였노라”(삼하12:13)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지은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지은 것입니다.휴!!! 그 죄를 고백하는 시가 시편 51편 이지요. 우슬초로 나를 정결게 하소서 ” 내가 깨끗해 지리라, 나를 씻겨 주시옵소서 내가 눈 보다 희게 되리라……..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 하시고,내안에 정직한 영을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주앞에서 쫒아 내지 마시며(다윗왕은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가 파멸 되는 것을 걱정함) 나로부터 Holy Spirit(성령님) 이 떠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이 주신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시고 당신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다른 모든 죄 짓는 자들에게 당신의 도를 가르치겠나이다. (그래서 다윗은 그 도를 가르치는데,그 가르치는 시가 시편 32편 입니다)
  •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을 배우는 것은 성경말씀을 외우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그 말씀을 외우면서, at the same time, 그 말씀을 묵상 해 가면서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를 배워서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해서 성경공부를 하는 것 입니다.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계속 하나님과 예수님과 체크하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성령님이 나에게 음성을 들려 주시면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히3:8) 그 음성에 귀를 귀울여서, 성령님이 나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고백 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못 느끼는 죄를 다른이가 권면해 오면, 우리는 다윗왕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께 범죄 했노라고 고백하는 참된 용기가 필요 합니다. 그렇게 했을때만이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자들은, 그러면 성경 말씀데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살려고 하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를 지키기 위해) 매일 져 주어야 하고, 인간적으로 보면 항상 모욕 당하고 살아가야 하나요? 라고 질문 할 수도 있읍니다. 저는 몇년동안 그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 질문도 많이 했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로마서 12장 19절을 이해 시켜 주셨읍니다.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니까, 다른이가 나를 해치려 할때는 당신 손수 일을 처리해 주시겠다는 이야기 입니다.아!!! 얼마나 그 것보다 확실한 방법일까요? [만약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왕따 당하고 있다면,우리 부모의 마음이 어떤가요? 내가 가서 그 아이를 혼 내고 올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 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니까,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나를 대신 해서 해결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내 할 일을 할 테니까, 너는 네가 할 일만 해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렇게 하면 네가 숮불을 그 사람에게 놓는 것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는 그분의 임재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고 계시지만, 그 분의 임재를 충만하게 경험하려면 당신이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반응를 해야 합니다.
    • 하나님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히11:6,고후5:7) - 하나님이 존재하셔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의 행동에 제약이 옵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 중대한 조정을 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과 길을 보여 주기 위해 성령님에 의해 성경, 기도, 환경,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실때 우리는 믿음의 갈등을 할 수 있는데, 그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위해 나의 삶이 조정 되어져야 합니다.
    •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는 행동을 합니다 -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왕이시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나이다” 라고 말하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도 많이 드리고 하나님의 일을 아주 열심히 한다 할 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에 더 관심이 있으십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 생각 나지요? 우선권의 문제 입니다. 바른 믿음을 가질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 할 수가 있읍니다!
  •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은 믿는자 라고 말은 하면서도 모든 일을 자기 생각과 자기 눈에 보기 좋게 행하면,그의 인생이나 그의 교회생활에서 코이노니아를 경험하기는 불가능 합니다.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충성과 신의를 바치는 것은 영적 간음입니다. 만일 어떤 목사나 장로, 집사, 혹은 영향력이 있는 사업가나 위원회가 교회를 운영하거나 다스리게 되면 코이노니아는 위협을 받읍니다.우리 성도들 각자 각자가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하면, 그 것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것이며, 물론 성도들간에 의견의 마찰은 있을 지라도 그 문제를 해결 하는 방법에서는 사탄의 밥이 되지 않고, 성령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며 지켜 주시는 교회가 됩니다.
  • 우리는 우리가 종교적인 행사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을 대치하는 바람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회를 놓친 적이 있는지 하나님께 알려 달라고 기도 해야 합니다.
  • 우리가 예수님과 관계가 있으면 사명의식이 있읍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내린 지상 명령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기만 하라고 하지 않으셨읍니다. “가르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지키게 하라” 라고 하셨읍니다. 우리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깨달은 자들의 사명 입니다!우리는 교회가 제 구실을 하도록 목숨걸고 쓰임 받아져야 합니다. 제 구실을 하고 있는 신약성서적 교회를 떠나서는 온전한 신앙인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의 예를 다시 읽으면서 왜 우리가 순종함에 있어서 서로 도와야 하는가를 생각 해 봅시다. 예는:
    {저는 세살 짜리 아이가 있는 한 부부의 집을 방문 한 적이 있읍니다.부모가 “이리온!” 하고 말했을때 그 소녀는 반대편 방향으로 뛰어 갔읍니다.그런데도 그 부모와 할머니,할아버지는 “허허, 아주 귀엽죠?” 라고만 말 하는 것이었읍니다. 하루는 그 소녀가 앞마당에서 놀고 있었읍니다.대문은 열려 있었고, 아이는 두 대의 차가 주차된 사이로 뛰어 갔읍니다.차가 오는 것을 본 엄마가 ‘얘야, 이리온!” 하고 소리쳤읍니다. 그 소녀는 웃으면서 막 달려오는 차 앞으로 뛰어 들어가서 그만 죽고 말았읍니다.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인도한 장례식 이었읍니다.}
  • 우리는 이 사실를 읽으면서 영적으로 적용 시켜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다른 성도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적해 주지 않는 것이 사랑 하는 일 일까요? 인간적으로 좋아한다고 그 사람의 잘못된 행실을 귀엽게 받아 주어야 할까요? 그 소녀가 처음에 야단을 맞았으면, 그 소녀는 죽음을 면 할 수도 있었읍니다. 그 부모와 조 부모의 잘못입니다. 그 소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 입니다.하나님은 그 부모가 그 소녀를 애초에 야단쳐서 그런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원 하셨을 것입니다.
  • 우리 성령에 매임 받은 자들은 사사로운 정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데 주저 하면 안 됩니다. 물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후에 사랑이 동기가 되면…(만약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지 않으면 그럴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그 이유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 하였음이라”(행20:26-27) 우리는 그렇게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앞에서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사울왕과 요담왕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사람을 두려워 했기에 일어났던 그 사실을 마음에 새기면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돕기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1.나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하신일, 하고 계신일들을 증거 할까요?
    2.나와 같이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배운 방법들을 알림으로써 그들도 하나님을 경험 할 수 있는 길로 가도록 도와 줄까요?
    3.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공부하라고 추천 할까요?
    4.나도 한 그룹을 모아서 “하나님을 경험 하는 삶”을 인도 할까요?
    5.다른 제자 훈련교제를 찾아서 같이 공부 하도록 주선 할까요?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간절히 간절히 예수님께 구합니다. 매일 매일 예수님이 주시는 영의 떡인 말씀을 계속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읽는 것에 만족하시지 말고 묵상을 깊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그 말씀에서 내게 주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항상 ask 하시기 바랍니다. 말하자면 말씀을 공부할 때 기도 하는 심정으로 공부하시면 말씀공부와 기도가 병합된 하나님과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은 떨어져서 할 수 없읍니다. 같이 할때 성령님이 나타나시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나의 인격체로 만나서 매일 매일 고주알 메주알 아뢰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집사님들이 되기를 권능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합니다.
  •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책을 다시 혼자 공부 해 보세요. 또 다시 은혜가 넘칠 것이 확실 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공부 인도자 윤삼희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