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26, 2007

Experiencing God - Bible Study (Week 7 - Nov. 25)

제 5단원(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하나님을 이해하고 경험하는데 있어서 핵심은 하나님이 언제 말씀하시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 입니다.
구약에서는 천사들을 통해서, 환상을 통해서, 꿈을 통하여서,우림과 둠빔을 사용해서, 비유를 통해서, 세밀한 소리를 통하여서,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읍니다.구약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각 개인에게 독특하게 말씀하셨고, 확실하게 나타나셨으며,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슨말씀을 하시는지를 알게 나타나셨읍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부분과 여러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후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읍니다.그 말씀이 복음서에 있는 것입니다.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고…”(요1:14)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육신이 되셨읍니다.(요일 1:14)


*사도행전에서부터 현재까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 자신의 계시를 나타내 줍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에게 영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모든 것을 당신에게 가르치시는 분 입니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기 전에는 아무도 영적인 진리를 이해 할 수 없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님이 우리에게 역사하는지 알아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읽읍니다. 그러면 진리의 영인 성령님이 진리를 나에게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랬을때 나의 인생을 하나님의 진리에 조정합니다. 그런 순종의 삶을 살을때 하나님은 내 안에서, 나를 통하여서 그 분의 목적을 이루시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나타내실때, 그 것이 나를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인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영적인 진리를 깨닫는 자체가 하나님과의 만남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진리를 나타내 보이십니다. 진리란 단순히 공부할 가치가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의 인격체 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읍니다. 예수님은 “내가…진리요” 라고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도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쌍방통행’ 으로 교제하고 대화하는 것 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도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일방적인 대화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기도생활은 주로 당신이 하나님께 아뢰기만하는 일방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도는 그것 이상의 것입니다. 기도는 듣는 것도 포함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기도 중에 말씀하시는 것이 당신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 합니다. 나는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신다고 믿읍니다. 나는 내가 무엇에 대해 기도할 때 성경말씀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읍니다. 나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시려고 노력하시는 것이라고 믿읍니다. 어느때는 내가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해 기도하면 성령님이 성경을 가지고 내 마음에 그 진리를 적용시켜 주시는 것을 발견 합니다. 그러면 그 즉시 기도하는 것을 중단하고 성령님이 제 마음에 주신 구절을 찾아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니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 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로8:26-27)

성령님이 언제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성령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알아야 하는데 그 분의 뜻만을 원하도록 여러분이 결단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이기적인 욕심이나 육적인 욕심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그리고 난 후 기도를 시작해야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만지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도록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분의 말씀에 위배되게 여러분을 인도 하지 않으십니다.여러분이 기도를 통해서 느끼는 것이 성경말씀과 상반되는 것이면 그것은 잘못 된 것 입니다.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느끼는 것을 항상 성경을 통하여서 확인시켜야 합니다.

-성경공부 인도자 윤삼희 집사-

Tuesday, November 6, 2007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11:6)

세례요한의 생애에 걸친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소명감은 성경의 어떤 인물에 견줄수 없이 뛰어납니다. 그는 나실인의 서원을 전 생애를 통하여 지켰으며 어떤 쾌락도 마다하고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되는 어떤 편안함도 억제하고 살았읍니다. 세례요한은 전생애를 한가지 목적인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데 바쳤읍니다.

세상의 일은 혼돈 가운데 있고 자신은 창문도 없는 감방에 갇혀 있는 요한을 생각해 보십시요. 만약, 그가 예수님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이 잘못이었다면 자기의 생애는 헛수고로 살았다고 생각 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의 생각이 옳았다면 예수님은 그를 감옥에서 구출해 주실 수 있고 죽음을 면하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예수님은 그 권한을 사용하고 있지 않으셨던 것 입니까?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자녀가 보통 직면하지 않는 고통 스러운 딜레마에 빠졌을 것 입니다. '너의 하나님이 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생기는 그 메마른 가슴 처럼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라고 Gene Edwards 는 말합니다.

세례요한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의 뜻이 하나님을 위해 방랑생활까지 하며 자기의 전 생을 바친 그 요한의 기대 이상임을 이해 할 수 없읍니다.그러나 이해해야만 합니다. 왜? 믿음에 부른 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그런 경우를 당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도 많이하고 바로 살며 믿음이 깊은 사람들도 사랑하는 자녀를 잃을 수도 있고 그 자신도 병들어서 죽게 되거나 사고로 죽을 수도 있읍니다.
믿음이 깊어진 사람 일수록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사실에 더 회의를 느낄 수도 있읍니다.

감방에 갇혀있던 요한을 대신하여 요한의 제자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신입니까?"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왜 신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십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은 놀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을 읽고 계시기 때문입 니다. 그는 우리의 혼돈과 좌절을 알고 계십니다.

"나를 떠나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는 격리된 장소로 혼자 가셨읍니다. 만약 확실한 답을 주어야만 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 아니었을까요?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는 예수님과 실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서 세례요한 보다 중요한 자는 없읍니다. 그의 사역은 없어서는 안될 일이었읍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완성되었던 것 입니다. 그가 34살의 생일도 맞이하지 못했지만 히브리서 11장 39절에 나온데로 그도 저 멀리에 있는 약속과 함께 죽임을 당했읍니다.

그러나 살인자의 칼이 그의 목에 닿는 순간 요한은 저 위에 있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잘했다! 나의 아들아, 아주 참 잘했다! 이제는 나의 곁에서 세상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같이 참관하자".
이런 일을 사랑하는 배우자나 부모들이나 자녀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어렵지만 그렇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로서 이 세상은 밝아지고 있읍니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으면 복을 받습니다.

- 성경공부 인도자 윤삼희 집사-

Sunday, November 4, 2007

Experiencing God - Bible Study (Nov. 4)

제 4 단원(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하나님의 이름들

  • The Lord is my Banner(Nissi)—여호와 닛시
  • The Lord will provide—여호와 이레
  • El-Shaddai (The All sufficient God)—모든것에 풍성한 하나님
  • Jehovah-Rohi—우리의 목자이신 여호와
  • El Roi (The God who sees)—모든것을 보시는 하나님
  • Elohim (Creator)—창조주 하나님
  • Rapha (healer)—병을 고치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슬픔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위로자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만큼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공부과정을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라고 붙인 이유 입니다.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사랑이십니다.(신7:8,요일4:8,16)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율법을 생각하면 아주 무서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그 법을 우리가 다칠까봐 주셨다고… 하나님든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omniscient), 전능하시고 (omnipotent), 한 시에 여러 곳에 계실 수 있는분 (omnipresent) 이기에 우리가 볼 수 없는 우리의 장래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 하기에는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읍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 하십니다.(히13:5) 하나님은 당신을 깊게, 근본적으로 사랑 하십니다.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의 관계에 있어 풍성한 것을 손해 보지 않도록 지침을 주신 것 입니다. 인생은 당신을 완전히 파멸시킬 수도 있고 당신의 삶을 망쳐버릴 수 있는 지뢰와 같은 것을 지니고 있읍니다. [당신이 지뢰밭을 가로질러가야 한다고 가정합시다. 그 때 지뢰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을 인도해 주겠다고 자청했읍니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의 길을 나에게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라고 말하겠읍니까?]

*많은 경우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하나님의 일을 참여하기에 헌신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복 주시기만을 원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셔서 일하시기는 바라지 않읍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 주실 것에만 주목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이 당신에게 어떻게 나타나시며, 당신을 통하여 일하시며, 당신의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실지를 기대 하십시요. 하나님이 당신안에서 일하심 자체가 복임을 깨닫고, 하나님은 거기에 합당하게 축복해 주심을 믿드십시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2:9)

*강조하고 싶은 2가지

  1.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려고 하시는 바로 그때에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자신이 하고 계신일을 나타내시는 순간이 바로 당신이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시는 바로 그 때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모든 것의 최종 완성은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지 25년 후에 태어났읍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당신에게 오시는 시간이 바로 당신이 반응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께로 조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주도하신 일은 하나님이 성취하신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꼭 실행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읍니다. 어느때는 몇 백년 후에나 이루어진 경우도 있읍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 하고 있읍니다. 하지만 거의 2000년동안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들을 하겠지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장래에나 동일한 하나님 이십니다.”(히13:8)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느니라”(베후3:9) 하지만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면 천년이 걸려서 이루어졌던 일들이 하루만에 이루어질 수 있읍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읍니다”(베후3:8)


- 성경공부 인도자 윤삼희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