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6, 2007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11:6)

세례요한의 생애에 걸친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소명감은 성경의 어떤 인물에 견줄수 없이 뛰어납니다. 그는 나실인의 서원을 전 생애를 통하여 지켰으며 어떤 쾌락도 마다하고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되는 어떤 편안함도 억제하고 살았읍니다. 세례요한은 전생애를 한가지 목적인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데 바쳤읍니다.

세상의 일은 혼돈 가운데 있고 자신은 창문도 없는 감방에 갇혀 있는 요한을 생각해 보십시요. 만약, 그가 예수님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이 잘못이었다면 자기의 생애는 헛수고로 살았다고 생각 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의 생각이 옳았다면 예수님은 그를 감옥에서 구출해 주실 수 있고 죽음을 면하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예수님은 그 권한을 사용하고 있지 않으셨던 것 입니까?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자녀가 보통 직면하지 않는 고통 스러운 딜레마에 빠졌을 것 입니다. '너의 하나님이 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생기는 그 메마른 가슴 처럼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라고 Gene Edwards 는 말합니다.

세례요한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의 뜻이 하나님을 위해 방랑생활까지 하며 자기의 전 생을 바친 그 요한의 기대 이상임을 이해 할 수 없읍니다.그러나 이해해야만 합니다. 왜? 믿음에 부른 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그런 경우를 당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도 많이하고 바로 살며 믿음이 깊은 사람들도 사랑하는 자녀를 잃을 수도 있고 그 자신도 병들어서 죽게 되거나 사고로 죽을 수도 있읍니다.
믿음이 깊어진 사람 일수록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사실에 더 회의를 느낄 수도 있읍니다.

감방에 갇혀있던 요한을 대신하여 요한의 제자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신입니까?"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왜 신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십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은 놀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을 읽고 계시기 때문입 니다. 그는 우리의 혼돈과 좌절을 알고 계십니다.

"나를 떠나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는 격리된 장소로 혼자 가셨읍니다. 만약 확실한 답을 주어야만 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 아니었을까요?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는 예수님과 실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서 세례요한 보다 중요한 자는 없읍니다. 그의 사역은 없어서는 안될 일이었읍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완성되었던 것 입니다. 그가 34살의 생일도 맞이하지 못했지만 히브리서 11장 39절에 나온데로 그도 저 멀리에 있는 약속과 함께 죽임을 당했읍니다.

그러나 살인자의 칼이 그의 목에 닿는 순간 요한은 저 위에 있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잘했다! 나의 아들아, 아주 참 잘했다! 이제는 나의 곁에서 세상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같이 참관하자".
이런 일을 사랑하는 배우자나 부모들이나 자녀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어렵지만 그렇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로서 이 세상은 밝아지고 있읍니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으면 복을 받습니다.

- 성경공부 인도자 윤삼희 집사-

No comments: